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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시 20:1-9)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08-03-12 20:29:56
조 회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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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시 20:1-9                                                     2008-01-20

0. 한국에서의 상황 보고
한국에 간 이유는 아버지가 뇌 경색(중풍, 중풍병자는 독:Gelähmten)으로 11월 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12월에 공동의회와 연말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또한 1월 첫 주에는 제직 및 봉사자 임명식 등 교회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들이기에 이 일을 마치고 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1월 8-17일 간 약 9일간 고국에 머물러 부모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집에서 간병인(병을 간호하는 사람, Helfer)을 두고 지내고 있었지요. 제가 집에 들어가니 현관에 휠체어(Rollstuhl)  있었는데 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아팠습니다. 1919년 생이시니 한국 나이로 90이시기에 장수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평생을 건강하게 지내신 분이신데 역시 나이가 드시니 몸은 쇠약해 질 수 밖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바로 작년 까지만 해도 매일 새벽 남산 중턱까지는 올라가셨는데 그래서 아침 등산을 오신 분으로 최고령자이셨는데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운동을 할 수 없지 않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이발을 안 하시다가 아들이 온다고 하니 바로 집 옆에 있는 이발소에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가다가 너무 힘들어 돌아가려다가 이미 반 정도를 왔기에 있는 힘을 다해 이발소까지 갔다가 왔고 그 날은 너무 힘든 하루였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지요….

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며 아들이 온다고 하니 힘을 내어 일어나신 것을 생각하니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마음에 눈시울이 시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더운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곳에 있는 동안 바쁜 가운데에서도 저의 교회 식구들과의 만남은 거절하지 않고 다 만나고 왔습니다. 이상애 집사님, 윤지연의 부모 그리고 우리 교회 반주자 였던 최진경의 어머니 너무나 반갑게 만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또한 많은 사랑을 받고 왔습니다.
저의 교회의 모든 식구들이 이렇게 사랑의 마음으로 저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을 생각할 때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잠깐 최진경 어머니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특별히 이 분을 만나고자 함은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2003년도에 제게 베푼 마음과 그 후에 여러 면에서 도와 주신 일이 너무 커서 꼭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1. 진경 자매 어머니와의 대화 요약
이 분은 교회에서 권사님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하신 분입니다.
- 교회에서 지금까지 헌신하신 일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전도해서 지금까지 전도상은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뿐 아니라 교인들의 사랑을 또한 많이 받은 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권사님을 사랑하는데 특히 진실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뒤에서 조용히 일하시므로 정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분이지요.

그런데 2004년 말 이 분이 뇌 경색(중풍) 쓰러지셨고 의사는 8주간은 손발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병원에 누워서 많은 기도를 하면서 괴로워했지요. 나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목회자가 와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손발을 움직여보라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힘없이 돌아가는 목회자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4시간 연속으로 기도해도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열심히 기도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간병인이 옆에서 똥 오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밥을 입에 넣어줘야 하는 상황인데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럴 때 그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믿는 자 특히 그렇게 교회를 섬겼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느라 힘썼는데 그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말입니다. 하나님 손해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이런 나의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는 울면서 신음하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 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 분의 기도와 많은 성도들의 기도를 처음부터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입원 후 25일째 되던 날 그의 마음에 기지개를 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왼손을 위로 올려보려고 하니 손에 힘이 솟으며 손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왼 발에 뜨거운 힘이 오는 것을 느끼며 발을 뻗으니 그대로 발이 뻗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침대에 기대 발을 바닥에 대니 딛고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던 손가락에 힘이 오며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 병실 밖을 나가니 담당의사가 지나가다가 깜작 놀라 다시 돌아와 그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인식하고 내일 퇴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퇴원하고 바로 그 주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사랑의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했고 24시간 연속으로 기도했던 성도들은 주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다는 사실에 뜨거운 감사를 드렸고 목회자는 어느 때보다도 힘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그녀는 회개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뜻이 있어서 자신을 잠시 치셨는데 그 짧은 고난의 시간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원망했던 일 하나님은 왜 침묵을 지키느냐고 원망했던 일 말입니다.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믿는 자를 절대 그대로 놓아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 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깊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신약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를 영적 의미에서 믿는 자를 가리킴)은 홍해바다를 건넌 후 놀라운 은혜에 감격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의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출 15:2)

바로 놀라운 기적 앞에서 그들은 이런 감격의 찬송을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하나님은 그들을 물이 없는 ‘마라’라는 지역으로 가게 하니 사흘이 못되어 그들은 원망합니다. 그리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출 15:22-27)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으로 보낸 것은 그들을 넘어뜨리고 고난을 좀 당해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그 곳 마라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versuchen)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은 그들을 넘어뜨리려는 시험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더 온전히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절대 우리 믿는 자를 넘어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라’와 같은 곳에 있을 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할 때 이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그 분 곁에 있게 하고 그 분을 더 의지하게 하시기 위한 깊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어서 기적을 경험하고 나서 그들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뜻을 말입니다. 그들은 마라에서 11킬로 떨어진 엘림에 하나님은 샘이 열 두 곳이나 잇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음(출 15:27)을 깨닫고 회개와 감사의 기도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라와 같은 곳에 처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마라와 같은 곳에 여러 번 보내시지만 우리가 마라에 오래 머물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인간으로 이 곳에 와서 모든 아픔과 고통을 직접 당하셨기에 우리의 현재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현재 아픔 가운데 있습니까?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갈등 가운데 있습니까?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분의 한 없는 사랑의 뜻과 계획을 참으로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지만 즉각적으로 우리의 고통을 낫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조금 전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은 마라에서 즉각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요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병에 나 죽게 되었을 때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전갈을 듣고 곧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11장 3절에 보면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듣고 자신이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아픔의 상황은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뜻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되어지는 모든 일을 보고 운명적이라고 혹은 우연히 그렇게 되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역사이해를 Zufallstheorie에 근거해서 해석합니다. 그 해석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는 다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서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들에 핀 하나의 들풀도 돌보시고 나는 참새 한 마리 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먹이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역사는 우리의 현재 아픔의 시간은 고통과 슬픔의 현실에는 우리를 자기 것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알 때 삶에 의미가 옵니다. 기쁨이 있고 소명의식이 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온 뜻을 알게 됩니다. 내 가정과 교회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를 느낄 때 우리는 감격할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불꽃이 일어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픔이 있다면 고통의 시간이 있다면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뭔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아직 겸손치 못함이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상황으로 가게 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참으로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뜻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Ohne Not / kein Wunder / Um meinet willen
우리가 힘들 때 곧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사랑의 기적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 분은 우리가 그 분의 응답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지연의 시간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지극히 낮아진 상태에서 지극히 겸손해진 상태에서 그 분의 사랑을 바로 깨닫게 하기 위한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4. 오늘 본문 시편 20편에 보면 „고난 가운데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를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6절에서 말합니다.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름을 부으신 왕 곧 자기에게 속한 이에게 곧 믿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고 응답하여 주시고 주님의 힘찬 손으로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이 깨달음의 고백이 목회자 나의 진정한 고백이 되고, 또한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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