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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10-05-07 16:32:41
조 회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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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눅 7:11-17                                                          

인생을 하루에 비유해서 아침은 이상주의자로서 먹고 점심은 현실 적응주의자로서 그리고 저녁은 허무주의자로서 먹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청년의 시기에는 젊음이 있고 건강이 있고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기에 활기차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인간의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청년의 시기에 가졌던 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지고 중년에 들어서면 어느새 현실에 적응해 살게 되고 더 시간이 흘러 인생의 황혼이 찾아오면 과거에 가졌던 아름다운 꿈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마침내 마음은 텅 빈 허무함으로 가득 차서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직면하면 “인생은 결국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 바로 이 문제 곧 자신의 인생의 목적에 관한 의문이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앙인이었던 키에르케고르를 사로 잡은 것이었습니다.
후에 키에르 케고르는 이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진정 내가 하길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며 내가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 사상을 찾는 것이다.”

여기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파스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보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는 정말 다재 다능했고 수학의 천재요 발명가요 물리학 철학 등에 정통한 자였고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1654년 11월 23일 저녁 사교 파티의 주빈으로 참석했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 마차를 타고 귀가 하는데 바퀴 하나가 세느 강 다리에 부딪혀서 마차는 크게 부서졌고 마차 밑에 깔렸던 파스칼은 겨우 몸을 빼내 간신히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에서 처음으로 영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파스칼아 도대체 죽음 앞에서 너는 무엇이냐” 죽음 앞에서 천재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죽음 앞에서 네가 가진 젊음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당시 31세였던 파스칼은 이런 물음 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했고 이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고백하기를: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큰 공허가 있습니다. 그 공허는 주님께서 찾아오시기 전까지는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8년 후 39세의 나이에 죽었는데 그는 그리스도를 만난 고백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해서 그는 남은 8년 동안 새로 구입한 모든 상의마다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넣고 다녔는데 그가 죽은 다음 여동생이 상의의 가슴 부분이 두툼한 것을 보고 꺼내어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글을 잠깐 읽어보면:

제목: 불(Feuer)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가슴 깊숙이 느껴지는 확신 확신 기쁨 평안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자 너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잊혀지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 분은 오직 복음서에서 가르치는 길로만 발견될 뿐
인간 영혼의 위대함
“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했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나이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이 부분 중 앞 부분을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설명합니다.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말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얘기는 하나님 그 분을 아는 것은 우리가 명상하고 경험해서 만나지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만났던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다른 어떤 종교 힌두교나 불교나 다른 어떤 종교를 통해 만나지는 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그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만난 하나님이요.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참 기쁨과 평안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파스칼은 자기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구원의 감격이 식을 때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 감격을 되새기기 위해 양피지에 그 말을 적어서 외투 안에 넣어 놓고 꺼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를 찾아오신 날을 감격해 하고 기뻐하며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 드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청년 여러분!
전도서(Prediger) 기자는 많은 신앙적 고민 끝에 12:1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그렇습니다. 젊을 때에 많은 고민도 하고 꿈도 꾸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파스칼이 말한 대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만 삶의 의미와 기쁨 그리고 평안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에스겔이란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골짜기 한 가운데 마른 뼈가 가득 차있는 환상을 그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살게 할 수 없는 상황을 주께서 보여주십니다. 그 이야기가 37장 1-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합니다. 이 죽어있는 사람들에게 즉 이 마른 뼈와 같은 자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생기(Odem) 곧 살게 하는 생명의 기운이 그들 속에 들어가서 뼈들이 서로 이어지고 살이 붓고 마침내 그들이 살아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와 같은 우리에게 찾아오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죽었던 자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길 원하십니다. 이 기운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는 기쁨이 생기고 삶의 목적이 뚜렷해지고 평안이 옵니다.

사랑하는 청년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눅 7장은 단순히 한 죽은 청년을 육체적으로 살리신 것이 1차적 중요성을 갖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 인간은 주검을 향해가는 존재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전에는 우리는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잠시 들어가 봅시다.  여기에는 두 행렬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를 따라가는 행렬 곧 생명을 향해가는 행렬이요. 또 하나는 죽은 청년의 관을 네 사람이 메고 나인 성 밖으로 나가는 행렬입니다. 그것은 주검을 향해가는 가는 행렬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를 사람들이 관에 넣고 당시의 관습대로 늦은 오후에 묘지를 향해 갑니다. 이 행렬 뒤에는 이 청년의 어미가 울면서 갑니다. 그 과부의 처지가 너무나 딱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행렬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일찍이 남편이 죽었고 이제 하나 남은 아들까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대로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여인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은 주검을 향해가는 행렬입니다. 여인도 함께 있던 자들도 압니다. 아들 청년은 죽었고 이제 매장지를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마음에도 더 이상 살 희망이 없기에 절망으로 슬픔으로 차 있습니다.

2) 주께서 가까이 오심
그런데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이 청년은 죽었기에 다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과부와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여기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 주검으로 가는 행렬에 주님이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과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절망의 현장을 뛰어넘어 주께서 오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보다 더 깊이 인간을 보시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은혜입니다. 주님은 과부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그 여인과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으셨지만 이미 여인의 마음 깊은 곳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보셨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은 이미 여인의 슬픔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울지 말아라“
그리고 곧 관에 손을 대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청년은 일어났고 마침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주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죽음의 행렬을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행렬에 있을 때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주검을 향해 가는 행렬에 있는 우리를 주님은 찾아와 손을 대시고 일으키시고 살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관에 손을 댄다는 말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검을 향해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의 말씀이 주검을 향해가는 우리에게 들려질 때 우리의 마음은 그 분의 손 댐으로 생명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다. Gott hat sein Volk besucht
그 분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와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 밭 한 가운데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분의 손 댐을 경험할 것이요. 우리가 다시 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험을 오늘 우리가 진정하게 되면 „아! 당신은 진정으로 나를 우리를 찾아주셨군요. 아! 이 기쁨 이 감격으로 진정 당신이 맡기는 일을 하겠습니다.“
당시 주검의 행렬을 뒤따르던 사람들은 청년의 일어남을 보고 함께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17절 말씀입니다. 아!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찾아와 주셨군요. Gott hat sein Volk besucht.

이 고백이 나의 고백 우리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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