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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딤의 한 가운데에서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10-11-11 16:56:00
조 회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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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비딤의 한 가운데에서
출 17:8-16                                                     2010-10-17

1. 신앙인의 삶
신앙인의 삶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의 억압으로부터 하나님의 힘과 도움으로 홍해를 건넜을 때, 그들은 감격과 기쁨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내가 주님을 찬송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들을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출 15:1-2)라는 말로 시작해서 긴 찬양의 노래가 출 15:1-8에 쓰여있습니다.

또한 아론과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은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노래하기를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출 15:20-21)
그들은 이 시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적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민족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믿는 자 곧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서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체험하고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며칠이 못되어 곧 3일이 못되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출 15:4)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 만나는 수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출 15:22이하) 이들은 이어서 신 광야(출 16:1)에서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출 16:3)

이러한 그들의 원망은 얼마 전 그들이 홍해를 건넌 후 부른 찬송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러나 우리 역시 위기에서 어려움에서 쉽게 넘어지거나 좌절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 아말렉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광야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 아말렉 민족은 매우 관심이 가는 민족입니다. 이 민족은 끈질기게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힙니다.
성서에 보면 이 민족은 이 시간 광야에서 한 번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고 사라진 민족이 아닙니다.
1) 아말렉은 가나안인과 힘을 합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참조: 민 14:43)
2)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도 아말렉 민족은 미다안 사람과 함께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모든 식물과 양 소 나귀를 남기지 않고 착취해 갑니다.(삿 6:35)
3) 이 후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미다안 민족과 함께한 아말레과 싸우는 이야기(삿 7:6,12)
4) 이 민족은 다윗 시대에 까지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괴롭히므로 다윗은 아말레과 전쟁을 합니다. (삼상 30:7이하)

이렇게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한 번 공격하고 사라지지 않고 긴 시간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지 않고 괴롭힌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을 어느 민족보다도 미워했고 그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길에 아말렉 사람이 당신들에게 한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였습니다...당신들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 사람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신 25:17-19)

이 구절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특히 미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언제 그리고 어디를 공격했나요?

이들은 이스라엘이 물을 마심으로 생기를 찾았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음으로 힘을 되찾았을 대, 푹 잠을 자고 난 다음의 시간, 이럴 때는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관찰하다가. 이스라엘이 목말라 여러 날을 헤맬 때나, 배고픔으로 괴로워할 때 그리고 긴 행군으로 매우 피곤해 할 때, 바로 이때에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공격했나요? 즉 그들의 공격부위가 어디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당신들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길에서 당신들을 만나 당신들 뒤에 처진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였습니다.”(신 25:18)
이스라엘의 노인들, 어린아이들, 병자들은 긴 행군에서 자꾸만 대열에서 쳐집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말렉은 이스라엘 민족의 약한 부위 곧 노인들 어린아이들 병자들이 공격을 받으니 큰 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가나안을 향한 길은 자꾸 지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화: 춘향전
춘향전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춘향이는 사랑하는 이몽룡(사람이름)이 과거시험(Staatsexamen)을 보러 가야 했기에, 그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춘향이는 괴롭지만 곧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 속에 그를 기다립니다.
이 때 새로 이 고을에 부임한 악한 변(성) 사또(고을의 Haupt)는 주민들에게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함으로 고을 주민으로부터 원성을 받습니다.

이 변사또는 춘향이를 보고 반하여 갖은 회유와 협박을 하지만 춘향이는 아몽룡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그의 청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오리라고 기대했던 이몽룡이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 변사또는 춘향이의 약한 점을 찾아 공격을 하지만 춘향이의 이 몽룡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춘향이는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되므로 이 시간 그녀가 가장 정신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게 되지만, 그녀는 변사또의 청을 이때에도 거절합니다.

이런 시간에 그녀의 사랑한 애인인 이몽룡은 암해어사(Vertreter des Königs) 출두요”라는 말과 함께 암행어사로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악한 변사또는 심판을 받고 끝까지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견지한 춘향이는 기쁘게 애인과 만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춘향전을 영적으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믿는 자인 춘향이가 광야 같은 어려운 시간에 믿음을 견지하고자 할 때 오늘의 유혹자인 변사또는 때마다 나타나 춘향이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변시또는 춘향이가 가장 힘들어할 때, 연약해졌을 때마다 나타나 춘향이를 유혹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나 춘향이가 이몽룡 곧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견지하니 이몽룡은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나타나 그녀를 안아주고 위로합니다.

영적 의미에서 본문에 나오는 아말렉은 믿는 자 곧 이스라엘 민족을 끈질기게 괴롭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 악의 영, 유혹자를 상징합니다.(비교: 광야에서의 예수의 유혹)

3. 모세가 손을 들면
춘향전의 변 사또처럼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약할 때마다 나타나 약한 부위를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의 대열의 후미 곧 노인들 어린아이들 병자들이 있는 부위를 때마다 나타나 공격하니 마침내 참다 못하여 모세는 르비딤이란 곳에서 군대장관인 여호수아에게 명합니다.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시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소.”

다음날 드디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 위에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이 때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동화에나 나옴직한 이야기이다. 황당한 이야기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믿는 자가 아말렉과 싸워야 할 영적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여후수아의 칼
또한 여후수아가 아말렉과 싸운 칼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힘 지혜 건강, 곧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말합니다. 신앙인이 오늘의 광야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은혜 받은 분량대로 살려고 하지만, 오늘의 아말렉은 때마다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가나안을 향해가는 행진을 멈추게 하려고 합니다.

이 아말렉은 각 믿는 자의 약한 때와 약한 부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랄렉은 믿는 자가 약한 상태에 있을 때마다 약한 부위를 공격합니다. 바로 이럴 때마다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께 손을 들듯이 우리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칼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과 지혜는 하늘의 물줄기를 받을 때에만 참으로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에 만이 우리는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르비딤에 있는 우리
당시 여호수아와 장정들이 아말렉과 싸운 장소인 르비딤은 영적으로 볼 때 오늘의 세상 한 복판을 가리킵니다. 우리 믿는 자는 오늘의 르비딤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곳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때마다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마치 과거 모세가 손을 든 것처럼 말입니다. 모세가 손을 든 장소인 그 산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골방이고 기도처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해지면, 과거 여호수아의 칼이 무디어지고 당시 함께한 장정들이 아말렉에게 밀리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의 영의 힘에 밀리어 가고 마침내 넘어지게 됩니다. (비교: 눅 10:38-42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이것이 바로 아말렉의 목적입니다.

오늘 나에게 약한 부위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아말렉은 우리의 이런 부위를 공격합니다.
오늘의 아말렉은 더 나아가 오늘의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교회에 나타나 이 모두를 자기 수하에 넣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그의 수하에 있으면 그는 공격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게 졸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아말렉이 왕 노릇 하려 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아말렉이 공격해 오는 것을 깨달은 자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우리의 칼로만 싸울 때는 이길 수 없습니다.

약해질 때마다 우리는
1) 우리의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야 합니다.
2) 우리가 지칠 대 하나님은 아론과 훌을 보내 도우시듯 분명 또한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에게 아론과 훌과 같은 자를 보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이 도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오늘의 르비딤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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