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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마 5:13-16)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12-10-20 02:22:20
조 회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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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항상 써오던 대로 설교 날짜를 쓰는데 나도 모르게 2011년이란 단어를 썼다가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2011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012년 새해 첫날입니다.
새해에 저와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해에는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해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 새해에는 나와 그리고 우리 가정 안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1. 한국교회의 모습
저는 사랑하는 조국의 교회들이 정말 예수의 제자 된 교회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가 생각할 때, 부끄러울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2011년 보도된 바를 보면 지난 수십 년간에 비해 가장 많은 대형사건들이 터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의 이미지가 나쁘게 보도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형교회들에서의 권력 다툼, 이권싸움, 폭력 그리고 법정고소들입니다.
하나님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이 세상보다도 더 추잡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참으로 이 시간 교회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교회에서의 선포도 가르침도 더 이상 힘을 가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언제 사용되었느냐 하면 그 용어는 바울과 바나바가 일했던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1:26에 나오는데, 바나바가 처음 그 곳에서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라는 사람의 인품과 신앙을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서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행 11:24)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많은 믿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일을 하다가 도저히 혼자 일하기에 벅차서 바울을 불러옵니다. 바울은 바로 이 바나바 때문에 처음으로 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안디옥 교회는 그가 일평생 섬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둘이 일하기 시작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믿는 자들 스스로가 자기들에게 붙인 이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제자들을 보고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들을 존경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참 명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들의 삶을 보니 자기들과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도와줍니다. 서로 나누며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믿는 사람들의 대열이 되기를 즐겨 하였습니다.

성서는 이 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다.(행 11:21) 그리고 이어서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행전 11:26에 In Anthiochia wurden die Jünger zuerst Christen genannt.

한국교회의 모습
그런데 오늘의 교회 특히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이란 이름은 이제 일반 사람들에게 존중되는 이름이 아니라 반대로 경멸시되는 이름으로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도리어 이들을 손가락질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고 교회로 몰려들기 보다는 떠나갑니다. 조용히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욕을 하며 떠나갑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저는 이런 여러 비판을, 세상 사람들의 비판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반성하고 회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명예로운 이름을 되찾으려면 성서가 전하는 원래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의 수가 점차 줄고 있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교회의 부패한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비해 카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특히 1980년 이후 점차 그 숫자에 있어서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 증가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신교에 비해 교회의 부패된 모습이 적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카톨릭은 사회가 아픔을 겪을 때 곧, 부당하게 억압된 자, 부당하게 가난하게 된 자들, 부당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소식을 들으면 카톨릭 교회는 때마다 이들의 아픔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카톨릭 교인들의 인구는 한국에서 늘기 시작한 반면 개신교는 점차 줄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 고 이태석 신부
2011년 저는 고 이 태석 신부에 대한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교회가 어두운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준 사람입니다.
원래 그는 의사였는데 후에 신부가 되어 남 수단의 톤즈라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다 그가 한국 방문 시 발견된 대장암으로 한국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가 가난한 톤즈라는 마을에서 많게는 하루에 300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정말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했을 때, 그 마을의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었고 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진심으로 그 신부를 사랑했던 것을 봅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온 마을이 충격에 빠지고 특히 그에게 음악을 배웠던 학생들 하나 하나는 눈물을 흘리며 어쩌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그가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었기에 이렇게까지 운단 말인가?

그에 대한 영화 <울지마 톤즈>를 만들었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이기심 가득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말하고 싶었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사랑과 헌신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감독은 말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누구 위에서 군림하려거나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섬기며 봉사한 한 사람 이 힘든 상황에서 혼자 8년을 일하면서도 그들을 통해 배운다고 겸손해 하며 살아간 사람을 주목할 때, 하나님이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봅니다.

2011년 12월에, 이 영화가 로마 교황청에 까지 알려졌고, 교황청 역시 이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고 „한국의 한 젊은 신부가 이렇게 큰 일을 했다니 놀랍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더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 이태석 신부의 활동을 많은 나라에 알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를 통해 읽었습니다.

2. 본문으로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란 용어의 원래 의미를 보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헬라어로 ecclesia라고 하는데, 그 뜻은:
군대의 전령이 나팔을 붑니다. 빨리 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나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공동체에 모인 자들을 부름 받은 사람들 (die von Herold Herausgerufenen)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군대의 전령이 나팔을 불어 모이라고 한 것은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모이는 것 자체만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지요. 이렇게 사람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 모인 이유는 임무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모인 자들은 임무를 받아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회의 두 측면 곧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 어느 한 쪽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이는 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회의 일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 말씀을 배웁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그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받았으면 이제는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 선교학 교수인 J.C. Hoekendijk라는 분이 „흩어지는 교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은 이 책에서 교회는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했지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다. 너희는 교회의 빛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2.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여기서 세상은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뜻은 너희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것입니다. 이 변화된 자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 소금의 역할
소금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음식 전체의 맛을 변화시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킵니까?

많은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교회는 이 사회를 변화시킬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분명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볼 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 시키고 맛을 내는 일을 하기 보다는 반대로 교회가 세상에 속하여 갑니다. 세속화되어갑니다. Säkularisierung 의 원 뜻은 gehören zu der Welt 그 단어가 말하는 대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에 빠져갑니다. 세상에 속하여갑니다.

마지막에 이렇게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맛을 내지 못하면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밖에 내버려져 세상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바로 오늘날의 교회 모습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손가락질 하고 비웃고 있지 않습니까?
소금의 역할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음식 속에 들어가 음식에 짠 맛을 내게 합니다. 바로 이 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그것은 봉사와 헌신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이 짠 맛을 잃고 세속화 되면 마지막엔 세상이 교회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짓밟습니다.

2.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등불을 켜서 그 빛을 아무도 안 보게 말(곡식을 푸는 그릇) 아래 두지 말고 촛대 위에다 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며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빛을 왜 사람들에게 감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비추라고 했나요? 자기 과시나 자기 자랑을 하라는 것입니까?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서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은 후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받은 은혜를 나 혼자만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빚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한 말의 빛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을 받아 우리는 그 받는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우리 스스로가 발하는 빛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빛은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16절)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전하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신 그 큰 사랑을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의 모습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했다면 그 받은 은혜의 빛을 비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섬기는 이 공동체 안에서의 돌봄과 사랑에서 나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곧 세상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마지막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아름다운 행위를 안 믿는 자들이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묻습니다. 이들은 누구이기에 이렇게 사냐고 이들은 어떤 힘으로 이렇게 행동하냐고?
그들은, 마지막에 그들 역시 믿는 자의 대열에 속합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대열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들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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