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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눈먼 자 (요 9:1-7, 35-41 )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13-11-08 17:11:35
조 회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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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때부터 눈먼 자
요 9:1-7, 35-41                                                                                                                       

들어가는 말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Werk)은 곧 그 일과 더불어 그 일이 가리키는 의미(Bedeutung)가 있다고 했습니다. 곧 예수님이 하신 일인 Werk란 그 분이 어떤 기적을 행했을 때를 말합니다. 또한 그 분이 이 일 즉 Werk를 했던 것은 그 일 자체를 넘어서 그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오늘의 본문을 우리가 이해하려 할 때 중요한 것을 시사합니다(zeigen). 오늘의 기적이야기 곧 예수님이 날 때부터 눈먼 자를 고치신 이야기는 눈먼 자를 고치신 이야기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이야기가 의미하는 가리키고 있는 중요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오는 사람은 날 때부터 눈먼 자라고 합니다. 이 말을 통해 요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요? 분명 우리는 눈먼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이 자는 날 때부터 눈먼 자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사람과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도 그 사람의 상태는 자기들과 다른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참 멀어진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그는 나을 수 없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께 묻기를: 눈 먼 자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런 질문에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죄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기 위해서(die Werke Gottes offenbar werden an ihm 3절)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눈먼 자
여기서 말하는 눈먼 자는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뱀은 인간에게 찾아와서 말합니다.:  이 선악과를 따먹어라 이 것을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창 3:5)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말은: 아담과 이브에게 이 에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과일도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먹어도 되지만 단 한가지 곧 선악과 하나만은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곧 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는 일, 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에덴에서의 모든 일이 그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 곧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일 이 일 하나만을 금지시켰습니다. 이 명에 순종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그 벰의 유혹에 따라서 결국 그 선악과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거짓의 영인 뱀의 소리인 „네가 따먹으면 네 눈이 밝아진다“고 했지만 따먹는 순간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따른 것이 되었고 아담과 이브의 눈은 사실상 장님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의 장님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 역시 혹은 이 본문을 읽는 우리 역시 이 말씀을 보며 우리와 관계가 없는 구절이라고 생각할 때 그 것은 전혀 잘못 생각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눈뜨게 하려는 방법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게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때마다 우리를 치십니다.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를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를 깊은 슬픔에 있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를 깊은 아픔에 있게 하십니다. 때로 우리를 엉엉 울게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채찍을 내리시나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이런 어둠에 나를 가두시나 하고 원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그 것은 바로 우리를 참으로 눈뜨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그 것은 우리를 정말 자기의 아들 삼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그 것은 우리를 통해 정말 영광 받으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영원히 자기 품에 품으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를 치십니다. 때마다 우리를 아프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채찍이 하나님의 마지막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눈먼 자의 생각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자는 자신의 병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는 단순히 눈 먼 자도 아닙니다. 단순히 귀 먼 자도 아닙니다. 이 자들 보다 훨씬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의 병은 성경에서 말하기를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는 성한 눈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불의의 사고로 다쳐서 생긴 병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는 눈이 먼 자로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중병 중의 중병이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고쳐질 수(Unmöglich) 없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자입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자기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우리 역시 이런 깊은 절망과 어둠에 처하게 될 때 우리 역시 그 사람처럼 우리는 어떤 희망도 기대도 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날 때부터 눈 먼 자를 보셨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설교 본문은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 먼 자를 보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실 때에 바로 이 사람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현 상태가 나의 힘으로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님은 이 시간 그냥 지나가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우리를 위해 아픔과 고통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으로 오신 그 분은 현재 나의 아픔과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그냥 지나가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가시다가 멈추어 서시고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보셨습니다. 이 시간 그 분은 가시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눈을 만지심
눈먼 자를 보신 주님은 이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 분은 단순히 그 아픈 자를 보시기만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눈먼 자의 아픔 절망을 이미 알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조용히 눈 먼 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앉으셔서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서 그 것을 그의 눈에 발랐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말씀으로만 고치실 때도 있습니다. 또는 손으로 안수하신 후 고치신 때도 있습니다. 단 번에 고치실 때도 있지만 서서히 고치실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각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단계적으로 그의 병을 고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손이 아픈 자의 아픈 부위를 만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아픈 부위를 만지셨을 때 그 병이 곧 고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병자의 아픈 부위를 만지신 후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분은 우리에게 오시어 아픈 부위를 만지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아픈 부위를 만지시기를 원하시는 분 이시라는 것을 느끼십니까?  그 느낌은 인간의 힘으로 생기는 느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서 나의 이 깊은 절망과 아픔을 넘어 하나님의 치유를 그 분의 사랑의 손길과 터치를 느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성령이 당신 안에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마음의 변화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눈 먼 자는 예수님의 터치를 느낀 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나요?
그 자신은 한 번도 자기의 병이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불가능한 상태를 가능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만지심을 느꼈을 때 그의 마음은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 그는 하나님의 은총은 자기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떠났고 자신의 병은 도저히 고쳐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는 생전 처음 하나님의 긍휼과 치유의 손길 앞에서 주님의 말씀인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을 때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실로암 못을 향해 갔던 것입니다. 자기의 병은 고쳐질 수 없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주님의 터치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는 실로암으로 나갔습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실로암 못까지 갔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의 눈을 씻으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갔던 일은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이 시간 나에게 찾아와 나의 아픈 부위를 만지시기를 원하실 때, 주님의 말씀대로 그 분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서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이 그리고 병이 나를 사로잡지 않고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느끼신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진흙이나 연못이나 실로암의 물이 마력적인 힘이 있어서 그 자를 치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특별히 실로암의 뜻을 설명합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이 말이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우리의 병은 진정으로 치유된다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적으로 눈먼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이 눈 먼 자처럼 우리 역시 오늘의 세상에서 깊은 불행과 슬픔 그리고 절망에 있을 때, 그 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나을 희망이 생겼기에 성서의 눈먼 자는 실로암을 향해 간 것입니다. 그 믿음은 스스로 보는 자라고 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올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성한 자라고 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에게는 올 수가 없습니다.
참된 믿음이란, 우리가 마지막에 우리를 낫게 하신 주님을 만나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며 그 앞에 절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내 안에 있는 병을 다시 주님 앞에 내 놓읍시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해봅시다. “주님 저의 힘으로 정말 어떻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당신을 믿는 자로서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미움이 앞섭니다. 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늪에 빠져 있는 저입니다. 주님 이 시간 저의 깊은 병을 고치소서” 정말 눈 뜨게 하소서.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다가와 치유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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