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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espfarrer Markus Schaefer (엡 1:3-14) 설교와 번역
이 름 제일교회  
날 짜 2013-11-08 17:34:23
조 회 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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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Gnade unseres Herrn Jesus Christus und die Liebe Gottes und die Gemeinschaft des Heiligen Geistes sei mit uns allen. Der Predigttext des heutigen Sonntags steht im 1. Kapitel des Briefes an die Gemeinde in Ephesus. Ich lese die Verse 3-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통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설교본문은 에베소서 1장 3-14절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3-6절 Gelobt sei Gott, der Vater unseres Herrn Jesus Christus, der uns mit allem geistlichem Segen im Himmel durch Christus gesegnet hat. Denn noch bevor er die Welt gegründet hat, hat er uns durch ihn erwählt, dazu, dass wir heilig und untadelig vor ihm sein sollten. Durch seine Liebe hat er uns dazu bestimmt, seine Kinder zu sein durch Jesus Christus, wie er wollte und es ihm wohl gefiel, damit wir seine herrliche Gnade loben, die darin besteht, dass er uns seinen geliebten Sohn geschenkt hat.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4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5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6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7-10절 In ihm sind wir durch sein Blut erlöst, unsere Sünden sind vergeben. So groß ist seine Gnade. Gott hat sie uns auch durch viel Weisheit und Klugheit erfahren lassen. Denn Gott hat uns eingeweiht in das Geheimnis seines Willens gemäß seinem Ratschluss, den er mit Jesus Christus gefasst hat: Wenn die Zeit gekommen wäre, würde er ihn ausfuhren: Alles sollte durch Christus zusammengefasst werden im Himmel und auf Erden.

7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10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11-14절 Durch ihn sind wir auch zu Erben eingesetzt und vorherbestimmt worden gemäß seinem Plan und Willen. Damit wir, die wir zuvor auf Christus gehofft haben, zum Lob seines Ruhmes beitragen. Durch ihn seid auch ihr, die ihr das Evangelium der Erlösung, das Wort der Wahrheit, gehört habt, als ihr zum Glauben kamt, mit dem Heiligen Geist versiegelt worden. Der Heilige Geist ist uns versprochen als Angeld unseres zukünftigen Erbes, der Erlösung, nämlich, dass wir ganz zu ihm und seiner Herrlichkeit gehören und ihn loben.

11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또는 '우리가 상속을 받았습니다'
12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14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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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be Gemeinde,
Ich habe versucht, ihnen den Predigttext etwas mundgerechter zu servieren, als er im Original ist. Der Text hat es in sich. Die 12 Verse sind im griechischen Text gerade mal vier lange Bandwurmsätze, verschachtelt, voller Formeln und feststehenden Wendungen. Bei Luther sind es immerhin schon 6 Sätze, mit vielen Kommas, Einschüben und Gedankenstrichen. Ich habe 11 Sätze daraus gemacht und trotzdem: Ich weiß nicht, wie es Ihnen beim Hören des Textes gegangen ist, aber ich vermute mal, das eine oder andere liegt Ihnen quer. Sprachlich und inhaltlich.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오늘의 설교 본문을 원문에 있는 것보다 쉽게 전달하고자 시도해 보았습니다. 12개의 절은 원문인 그리스어 본문에는 단지 4개의 긴 문장이 서로 정해진 형식에 따라 연결되어있습니다. 루터 번역에는 그래도 Komma와 삽입구나 Gedankenstrich로 6개의 문장으로 되어있는데 저는 11개의 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오늘의 본문을 들었을 때 그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구절은 여러분에게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언어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Der heutige Predigttext bildet den Eingang zum Epheserbrief. Der Autor hat den Brief mit einer sog. Eulogie, einem Lobgedicht, begonnen, das die großen Taten Gottes erzählt. Nun haben wir von antiker Lyrik bei weitem nicht die Ahnung wie die ersten Leser des Briefes. Denen hat die Idee mit dem Gedicht wahrscheinlich gut gefallen: Die Fragen und Probleme der Menschen damals geht der Briefschreiber nicht mit einer theologischen Grundsatzerklärung an, er hält ihnen keinen Vortrag, auch keine Predigt, sondern er schreibt ein Gedicht, vielleicht war es sogar ein Lied.

오늘의 본문은 에베소서의 서두에 있는 내용인데, 에베소기자는 이 편지를 하나님의 크신 행위를 찬양하는 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고대의 시에 대해서 그 당시 사람들과 같은 지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런 시로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생각을 매우 좋아했던 듯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기자는 당시 사람들의 문제들과 질문들을 신학적인 설명이나 강연 혹은 설교로 다루지 않고 시로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시가 아닌 노래 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Was uns heute schwülstig, schwerfällig, frömmelnd und verschachtelt vorkommt, hat die Leser damals angenehm überrascht. Die > ideale Form, um Lob und Dank an Gott auszudrücken, das Interesse der Leser zu wecken und zugleich ihre Fragen, Sorgen und Nöte in den Blick zu nehmen. Wir können das heute leider nicht mehr nachmachen. Aber wir können versuchen, die Schwerpunkte des Lobpreises, die Botschaft, herauszuschälen und im schweren Gewand eines alten, gewichtigen Textes Dinge zu entdecken, die auch für uns leicht und wichtig sind.
오늘의 본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너무 장황하고 너무 무거운 느낌이고, 너무 엄숙하게 느껴지고 복잡한 듯 보이지만 그 당시 독자들은 이와 달리 아주 기분 좋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방법이 하나님의 대한 감사와 찬양을 제일 잘 표현하고 더불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게 하고 또한 그들의 질문들, 걱정들과 고난들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이것을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찬양시 안에 있는 Schwerpunkt 인 메시지를 드러내려고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 고대의 본문의 무거운 옷 안에 담겨있는 그 메시지(바로 그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무겁지 않고 그리고 중요한 메시지)를 찾으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Der Briefschreiber erzählt eigentlich in Kurzform die Große Geschichte Gottes mit der Welt. Er will den Lesern das Herz öffnen und den Blick erweitern. Er möchte, dass die Christen einmal von ihren Sorgen und Nöte absehen. Er möchte das mit antiken Mitteln schaffen, was guter Musik heute gelingt: Sich an Gott freuen können, bewegt sein von der Musik Gottes, abschalten können vom Alltag.

에베소서 기자는 이 세상과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간단한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자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이 눈을 넓히고 싶어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근심과 고난으로부터 한 번 눈을 돌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좋은 음악이 하나님과 관련해서 기뻐할 수 있고, 감동되게 하고, 또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그는 고대의 수단으로서 그것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So will auch der Briefschreiber, dass seine Leserinnen und Leser in allen Alltagsgeschäften und Nachrichten den Überblick wieder gewinnen. Dass sie nicht die nichtigen Dinge ihrer kleinen Welt zu wichtig nehmen und darüber Gott vergessen. Er will, dass es in den Herzen und Köpfen, in den Gesprächen und Gedanken der Menschen einmal Sonntag wird. Er möchte, dass durch die Zeit, durch Ehekonflikte und Existenzängste, durch Erlebnisse in Schule und Beruf; wieder ein Stück Ewigkeit sichtbar wird. Dass wir Momente erleben, wo wir spüren: Gott ist uns ganz nahe.

바로 이와 같이 에베소서 기자는 그의 독자들이 모든 일상에서 다시 보는 눈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무의미한 것들을 너무 중요하게 받아들여서 그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 그들의 대화와 생각 가운데 한번 주일 Sonntag이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통해서 그들이 부부싸움이나 실존적 불안들, 학교에서나 일터에서 겪었던 삶의 체험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영원이 보여질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느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Wir Menschen brauchen das. Wir lassen uns zu leicht festnageln auf die Zahlen und Werte des Heute. Wir lassen uns zu leicht bestechen vom sportlichen oder wirtschaftlichen Erfolg und kurzzeitiger Freude. Wir lassen uns zu leicht benebeln von Angeboten und bunten Bildern. Allzu leicht wird unser Leben bestimmt von Werbetafeln und Nachrichtensendungen, von der Fußball-Europa-Meisterschaft und der Hitparade.

우리 사람들은 이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숫자와 오늘의 가치에 너무도 쉽게 붙잡혀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운동이나 경제적인 성공 또는 순간적 기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여러 제안들이나 현혹케하는 이상들이 우리의 눈을 너무 쉽게 흐리게 만듭니다. 우리 삶이 너무나도 가볍게 광고나 뉴스 또는 유럽축구대회나 Hitparade 들에 의해 정해져 버립니다.

Nicht, dass Werbung an sich schlecht wäre, nicht, dass ich nicht selbst möglichst viele Spiele der Europa-Meisterschaft verfolgen werde. Aber wenn das Augenfällige zu wichtig wird, dann verlieren wir Gott aus den Augen und aus dem Herzen, dann verlieren wir leicht den Zusammenhang, den unser Leben mit seinem Schöpfer hat. Dann versiegt so schnell die Kraft, die uns geschenkt wird und die Freude, die wirkliche, tiefe Freude, die erst Menschen aus uns macht.

저는 광고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번 유럽축구 대회에 되도록 모든 경기를 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눈 앞에 있는 것이 너무 중요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눈이나 우리의 마음에서 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삶과 창조자의 관계를 잊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선사된 힘과 진정한 깊은 기쁨, 우리를 비로소 인간되게 하는 마음 깊은 데서 나오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Das ist es, was der Autor des Epheserbriefes seinen Leuten, uns, zurufen will: Die Große Geschichte Gottes, die Schöpfung, die ihr jeden Morgen miterleben könnt, die Geschichte seines Volkes, die bis heute andauert, die Geschichte Jesu und seiner Gemeinde, das ist Eure Geschichte. Das hat etwas mit Euch zu tun. Das geschieht um euretwillen. Gott wendet sich der Welt zu, nicht weil er das so lustig fände, oder weil er das brauchte, sondern weil es ihm auf uns ankommt.

그래서 에베소서 기자가 그의 독자 즉 우리에게 크게 소리쳐 전하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큰 역사, 너희가 매일 경험하는 창조의 세계,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예수님의 역사와 그 분의 공동체, 바로 이것이 너희의 역사이다. 이것이 너희와 관계되어있다. 이것이 너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거나 혹은 그 분이 그것을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기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Die Menschen, Sie und ich, stehen im Mittelpunkt der Großen Geschichte Gottes mit seiner Welt. Zu unserem Wohl, zu unserem Segen, ereignet sich die Geschichte. „Noch bevor Gott die Welt gegründet hat, hat er uns erwählt." Darauf sollen wir uns nichts einbilden. Gottes Erwählung bedeutet keinen Vorsprung vor anderen Menschen, schon gar keinen Grund zur Überheblichkeit. Gottes so frühe Erwählung bedeutet vielmehr: Alles, was nachher passiert, geschieht mit dem Ziel, dass Menschen leben.

사람들 즉 여러분과 제가 그 분의 세계와 더불어 하나님의 큰 역사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안녕 우리의 축복을 위해 이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착각해서 들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오만함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른 시기부터의 선택은 오히려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것은 인간들이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In Gemeinschaft miteinander. In Gemeinschaft mit Gott, in Selbstachtung und Achtung vor anderen. Dass sie sinnvoll leben, glücklich. Nicht ohne Sorgen und Probleme, aber mit einem festen Grund, mit einem Ziel. „Gott hat euch erwählt." Das bedeutet: Jede und jeder von euch ist Gott unendlich wichtig. Keiner von uns ist nur ein Rädchen im Getriebe. Keiner ist ein Niemand.
서로가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그리고 서로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사람들이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은 걱정과 문제가 없이 산다는 말이 아니라 확고한 토대와 목적을 가지고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택하셨다.“라는 이 말은: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 무한히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기계의 한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아무도 자신을Niemand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Im Gegenteil: Auf uns kommt es an. Gott will nicht ohne uns sein. Und als Gegenüber Gottes ist man wichtiger als jeder Präsident, als jeder Vorstandvorsitzende, als jeder Fußballstar. Wert, Sinn, das Gefühl, angenommen zu sein, bejaht zu sein, erfahren wir letztgültig nur bei Gott und bei den Menschen, die ihm folgen.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어떤 대통령이나, 회사의 회장이나 축구스타보다 더 중요합니다. 인간의 가치, 생각, 그리고 받아들여진 상태에 있다는 느낌, 긍정된 상태에 있다는 느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 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만 우리는 경험합니다.

Wir sind für Gott unendlich wichtig. Auch als Mitarbeiter. „Heilig, untadelig", sagt der Text, sollen wir vor Gott sein. Nicht als Musterschüler Gottes, nicht als himmlische Kaderorganisation, sondern als lebendige Belege für Gottes Güte. Wir können durch unser Leben zeigen, dass Gott die Welt tatsächlich regiert und in den Händen hält. „Erwählung" bedeutet darum auch immer Verantwortung.

우리는 하나님에게 무한하게 중요합니다. 또한 그 분의 동역자로서도 중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은‚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모범생이나 천상적 최고의 조직체Kaderorganisation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산 증인들(Belege)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정말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이 세상은 그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선택‘은 그 때문에 항상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Wie, wenn nicht an uns Christenmenschen, an unserm Reden und Tun, an unserer Gemeinschaft, unserer Hoffnung, soll denn deutlich werden, wie sehr Gott diese Welt liebt? Noch mal: Wir müssen dazu keine moralischen Hochleistungssportler werden. Wir sollen uns nur Gottes Güte gefallen lassen. „Lasst Gott machen, lasst euch verändern, gebt Gottes Geist Raum, begreift euer Tun als Gottes Tun."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의 공동체와 관련해서 우리의 희망과 관련해서 이 것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우리가 절대로 도덕적인(moralisch) 운동선수처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게 하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을 변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에게 공간을 주십시오. 여러분의 행위를 하나님의 행위로 생각하십시오..

Dann wird unsere Geschichte ein Teil von Gottes Geschichte sein. Dann wird unsere Lebensgeschichte, unsere Niederlagen und Sorgen, unser Einsatz, unser Handeln, unser Beten und Singen, unser Denken und Handeln, unsere Erlebnisse und Enttäuschungen ein weiteres Kapitel der Geschichte Gottes mit dieser Welt sein. Dann ist unser Leben nicht mehr nur eine Anreihung von Zufallen und Nebensächlichkeiten, mit einem sicheren Ende, nämlich: Sargdeckel drauf- und Schluss. Sondern dann knüpft Gott aus den Fäden unseres Lebens ein Ganzes. Dann erhält Sinn, was von außen betrachtet sinnlos ist.

그렇게 되면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역사, 우리의 실패와 걱정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행위, 우리의 기도와 찬양,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우리의 경험과 실망들이 하나님과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장을 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연과 부차적인 것들의 나열이 아니라 확실한 목적과 함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하나하나로부터 ein Ganzes 만듭니다. (?) 그러면 외적으로 봤을 때는 무의미했던 것이 (ein Ganzes으로 봤을 때는) 의미가 있게 됩니다.

Dann entdecken wir eine Hoffnung im Leben, die selbst über den Tod hinausreicht. Dann haben wir endlich eine Heimat und unsere Sehnsucht nach Geborgenheit, nach Halt wird gestillt. Dann erst erhält unser Leben die Würde, die angeblich unantastbar ist, von der aber keiner heute mehr so recht weiß, wo sie eigentlich herkommt und was sie ausmacht: Die Würde, den Wert, die Erleichterung, kein Staubkorn im Weltall zu sein, kein genetischen Zufallsprodukt, sondern ein Kind Gottes.

그러면 우리는 죽음을 뛰어넘는 삶의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고향을 찾게 되고 안전함을 그리워했던 것과 불안정했던 것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은 가치를 찾습니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이 가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이 가치가 우리의 가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더 이상 우리는 이 우주의 한 먼지나 유전적인 것에 의한 우연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Eine zweite wichtige Nachricht, ein zweites Evangelium, legt uns der Autor ans Herz: Die Große Geschichte Gottes, seine Absichten, das Leben, wie es in seinen Augen sein sollte, lässt sich nicht erkennen ohne Jesus, den Christus. An seinem Leben, an seiner Geschichte, an seinem Tun und Reden, an seinem Tod und seiner Auferstehung, wird deutlich, was wahres Menschsein ausmacht.
오늘의 기자는 또한 두 번째로 중요한 메세지, 곧 두 번째 복음을 우리의 마음에 전합니다: 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그의 계획과 그를 기뻐하게 만드는 삶은 예수그리스도 없이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그의 이야기,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통해서만 우리는 정말 산다는 것,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In seiner Geschichte spiegelt sich unsere, in seiner Geschichte wird deutlich, was sich der Schöpfer unter „Leben" vorstellt. „Alles sollte durch Christus zusammengefasst werden im Himmel und auf Erden. Durch ihn sind wir auch zu Erben eingesetzt und vorherbestimmt worden gemäß seinem Plan und Willen", heißt es im Predigttext. Auch eine schwierige, sperrige Botschaft. Vielen kommt dieses „Allein Christus  
heute intolerant und engstirnig vor. Und leider leiten immer noch Christen einen Absolutheitsanspruch für ihre Religion aus ihrem Bekenntnis ab.

그 분의 역사 안에서 우리의 역사가 비쳐집니다. 그리고 그 분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 본문 말씀인 10-11절에 보면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그리스도만‘이라는 말이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intolerant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고백을 통해 이 그리스도만이라는 절대적인 주장을 자신들의 고백으로부터 배제합니다.

Dass Gott seine Geschichte in Jesus, dem Christus, zusammenfasst und klar und deutlich macht, was wir tun sollen, wer wir sind, das ist in Wahrheit eine Befreiung. Es entlastet uns. Unsere Suche hat ein Ende. Wir brauchen uns unseren Sinn nicht mehr selbst zusammen zu biegen.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시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한 것, 그 것은 참으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추구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여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Wir sollen nicht das Nachdenken aufgeben und einfach naiv glauben. Wir Menschen müssen uns nicht länger selbst eine Würde zurechtzimmern, einen Sinn finden in Selbsterfahrung oder Hobbyphilosophie. Wir müssen uns mehr selbst eine Moral basteln, der dann eh keiner folgt. Wir haben festen Boden unter den Füßen und nicht auf Sand gebaut, wenn wir Jesus folgen, ihn als Maßstab entdecken und als Spiegel des Lebens.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숙고하는 것을 멈추어서도 또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에 대한 가치와 품위를 만들어 내려 할 필요도 또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해 경험과 철학적 취미를 삼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 따르지 못한 도덕적인 삶을 창안해 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기준으로 삼고 우리의 삶을 그분에게 비춰볼 때 더 이상 모래 위가 아닌 단단한 돌 위에 우리의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Gott bietet uns in seinem Sohn einen festen Grund, den Weg zum Leben. Nicht als für immer feststehende dogmatische Über-Botschaft. Nicht als handliche Fertigpackung fürs Glücklichsein. Nein, Jesu Leben hat Probleme und Leiden, ja den Tod nicht ausgespart. Bei Jesus, in Gottes Geschichte mit uns, kommen auch Karfreitage und Schmerz, Konflikte und Enttäuschungen vor. Aber durch all das hindurch wird der Blick frei für unsere eigentliche Bestimmung: zu Gott zu gehören auf ewig, damit wir unser Leben sinnvoll und wertvoll leben und mit anderen teilen können. Oder wie es der Predigttext am Ende ausdrückt: „dass wir ganz zu ihm und seiner Herrlichkeit gehören und ihn loben."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단단한 지반과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저 고착적인 교리적 복음이 아닙니다. 이 복음은 또한 손쉽게 가공, 포장 된 행복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어려움 나아가 죽음까지 겪으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 성금요일의 고난, 그 분의 고통과 갈등 또 그 분이 겪으셨던 실망이란 형태로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눈은 밝히시고 그 고난 뒤에 있는 메세지를 보여주십니다. 즉 우리는 주님께 영원히 속해 있고, 의미있고 값진 삶을 살며 이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Und der Friede Gottes, der höher ist als alle unsere Vernunft, er bewahre unsere Herzen und Sinne in Christus Jesus. Amen.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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